얼마 전에 타 기업에서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일하시는 분이 리서치 회사를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제안서를 작성할 수 있는지?” 클라이언트 시각에서 작성한 문서를 보게 되었다. 제안서 작성과 관련된 내용 이외에 리서치 회사의 태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는데, 참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자료를 보다가 문득 내 입장에서 참 기분 좋게 일했던 파트너들은 어떠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몇 가지를 좀 정리해 보고자 한다.

Love on Tehran`s Roof
Love on Tehran`s Roof by mohammadali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1.
새로운 정보를 항상 제공해 주는 파트너에게 신뢰감과 감사함을 느낀다.

리서치 회사 차원의 뉴스레터나 연구자료들 혹은 개인적으로 정리한 자료들을 특별히 프로젝트를 하고 함께 하고 있지 않은데 제공해 줄 때 전문가로서의 신뢰감과 그 노력에 감사함을 갖게 된다. 우리 회사의 서비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말이다. 해당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할 때 어떤 회사를 선택하게 될까? 당연히 그 단초를 제공한 회사다. 몇 번 이런 경우들이 실제로도 있었다. 반면에 아주 친한 척 연락해서 술먹자, 밥먹자는 부담스럽다. ! 물론 술이나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리서치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전해주는 경우에도 고마움을 갖는다. 하지만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사적인 관계로 저와 술이나 밥을 먹고 있는 리서치 회사에 계신 선배님, 동료, 후배님들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이건 공적인 관계인 경우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냥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좋답니다.)

 

2. 제안요청 내용에 대해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해주면 제안내용에 더욱 기대를 갖게 된다.

해외와 같이 rejection fee가 정착되지 않아서 제안 요청을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미안하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제안요청을 하게 된다. 제안요청을 하고 대략 1주일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게 되는데 그 기간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경우 해당 리서치 회사는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미안한 마음도 사라진다.^^ 그리고 제안요청설명회를 하는 경우도 드물어서 RFP의 내용으로 정말 이 프로젝트의 내용을 잘 이해할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또한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안을 갖고 있어도 제안 요청은 이슈 정도를 던지고 해당 이슈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제안해달라고 한다. 그 이유는 내부에서 생각하지 못한 더 좋은 방법을 리서치회사에서 제안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대응해 주는 리서치 회사는 제안서에 대한 기대도 많이 하게 되고, 최종 단계에서 같이 일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다음에 꼭 같이 일하고 싶어진다.

우선 RFP를 받은 후 메일이나 유선상으로 RFP를 잘 받았고 한번 잘 준비해 보겠다. 질문이 있는 경우 연락하겠다고 제안요청에 응하겠다는 연락을 먼저 해오는 경우.

중간 중간 프로젝트의 중요한 지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질문을 구체적으로 해오는 경우.

때로는 프로젝트 목적 달성을 위해 RFP에서 제시한 방향과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되는 필요성을 언급하며 해당 관점에서 제안서를 작성하겠으니 참고해 달라고 하는 경우(물론 그 필요성이 타당해야 하겠지만)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정확하게 제안서를 전달하고 후속 절차와 일정에 대해서 확인하는 경우

PT가 예정되어 있지 않음에도 혹시 시간이 된다면 캐주얼하게 제안 내용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필요하면 요청해 달라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

대략 이런 모습을 보이는 리서치회사는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생긴다. 그런데 RFP를 받고 어떤 연락도 없고, 어떤 질문도 없으며, 요청 시간을 넘기거나 너무 짧은 시간에 제안서를 보내는 경우 신뢰감을 갖기는 힘들다. 또한 질문을 하기는 하는데 RFP에 명기되어 있는 내용이거나 업종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질문하는 경우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45 Fremont, #1
45 Fremont, #1 by Thomas Hawk 저작자 표시비영리

 

3. 한발 먼저 클라이언트를 가이드하고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라.

개인적인 경험상 리서치 회사는 조금은 수동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확인해달라고 해야 확인해 주고, 진행을 위해 이러이러한 액션들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해야 액션을 취한다. 더구나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도 말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정말 신뢰감이 드는 리서치 회사는 항상 한발 먼저 행동한다. 이런 것들을 챙겨야 합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고려해 다음의 대응 방안들을 생각해 보았는데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와 같은 이야기들을 대체적으로 많이 한다. 즉 더 빠르고 더 폭 넓게 클라이언트보다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초안 설문이나 가이드라인, 참석자 프로파일, 테이블 가이드, 보고서 방향과 같은 것들을 기간에 맞게 정확하게 제공한다. 물론 하나 하나 이런 것들을 다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먼저 주는 것과 클라이언트가 달라고 해서 주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은 아실지 모르겠다.

 

4. 디테일의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이 부분은 앞 서 언급한 타 회사의 리서치 코디네이터분도 언급한 내용이다. 사소하지만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줄이거나 시간을 줄여줄 경우 감동한다.

 

예를 들어, FGD를 진행할 때 기본적으로 진행 당일 모니터링룸에는 참석자 프로파일, 가이드라인이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리서치 회사들이 첫 날에는 준비를 잘 하다가 점점 흐지부지 되기도 하며 시작하는 순간에서야 몇 부냐 필요한지 물어본다. 그리고 프로파일의 경우 스크리너의 응답내용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답변의 보기 번호를 그냥 숫자로 적어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크리너가 없으면 프로파일을 확인할 수 없다.(거의 100% 스크리너를 함께 비치해 주는 경우는 없다) 이 경우 참석자 정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파일은 별 의미가 없다. 또한 참석자를 좌석을 배치할 때, 예를 들어 대학생과 직장인을 5:5로 구성한다면 같은 그룹끼리 뭉쳐서 앉혀놓는 것이 모니터링 하기에 편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당 참석자가 대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매번 프로파일을 봐야 한다.(물론 주제에 따라 같이 앉힐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 디테일하고 까칠한 것 아니냐고? 입장을 바꿔서 모니터링 해보시라. 그 불편함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말하지 않아도 딱딱 맞춰서 준비하고 시작하기 전에 모니터링의 편의를 위해서 좌측에서는 대학생, 우측에는 직장인으로 좌석배치를 했습니다.라고 멘트까지 날려준다면 참으로 멋져 보인다.

Canon 5D Mark II
Canon 5D Mark II by Carlo Nicor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5. 보고서로 승부하라

앞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보고서의 퀼리티라는 점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진행 과정에서 아무리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보여도 문제가 많은 보고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물론 진행 과정의 프로페셔널한 태도는 보고서의 수준과 괘를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보고서 작성 앞에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파트너들의 보고서들이 좋았던 것 같다

 

1)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결과를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가끔 제안 단계에서 아무리 따져보아도 가능하지 않은 결과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이야기하면 논리에 의한 설득이 아니라 감성적인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이름을 대면 누구든지 아는 회사의 프로젝트 케이스를 꺼내거나 전혀 상관이 없는 업종의 이야기를 한다. 물론 리서치가 강한 회사, 이종 업종의 사례들이 단초가 되어 좋은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전혀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대를 높이고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도 영업 차원에서 중요하겠지만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이런 이런 식으로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리서치 회사의 한계나 프로젝트의 위험요소를 언급하며 불가능하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리서치 회사도 있다. 처음에는 너무 리스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서운하지만, 지나고 보면 대부분 옳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차선책을 함께 제안해 준다. (무조건 일이 늘어나고, 어려우니까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다.)

감언이설로 프로젝트 하나를 수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자의 경우 두 번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

 

2) 모르면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이전 글에서도 내부 정보의 제한에 따른 리서치회사의 한계점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대외비이기 때문에 알려주면 보고서 작성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는 정보들도 많다. 이 경우 현명한 리서치 회사는 우회에서 물어보고 물어봐서 구체적인 수치나 내용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나 현황에 대한 감을 갖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경우 보고서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어느 정도 고려한 좋은 결과를 전달한다. 하지만 오직 리서치 결과만을 갖고 보고서를 쓰는 경우 테이블을 PPT 문서로 전환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거나, 너무 생뚱 맞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리서치 코디네이터는 프로젝트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내부에서 기안을 올리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물어봐서 리서치 데이터 이외의 다양한 정량적, 정성적 데이터들을 얻는 것이 좋다.


Day 79 - f o c u s
Day 79 - f o c u s by margolov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3) 어렵게 한 부탁 흔쾌히 들어줄 때 감동한다.

글을 시작하며 언급한 문서에서 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리서치 회사에 있을 때 근본이 안된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봐서 가능하면 갑의 횡포를 부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저와 일했던, 일하고 있는 파트너분들은 전혀 이렇게 생각 안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끔 무리한 부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못 챙겨서 이기도 하고, 상위의사결정라인에서 새로운 이슈가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일정 단축, 추가 분석, 심한 경우에는 일정도 짧게 주면서 보고서의 전면 수정을 요청하기도 한다. (창피해서 얼굴 붉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돌파구는 파트너인 리서치회사가 유일하다. (내부 설득이 생각보다 어렵고, 결과를 보고하면서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렵게 한 부탁 정색하고 쉽게 거절하면 참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 어렵지만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죠라고 흔쾌히 들어줄 때 감동한다. 물론 냉정하게 계약관계에서 볼 때 안 들어줘도 상관은 없다. 최초 기획단계에서 논의된 것만을 깔끔하게 완료하는 것이 프로페셔널 한 것 맞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돌발상황 앞에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파트너라는 신뢰는 참 중요하다. 그 신뢰가 어느 경우에는 오직 그 파트너만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더불어 어려운 부탁을 들어줘야 할 때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코디네이터가 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는 파트너를 위해서 복사 심부름도 할 생각이 있다.

 

4) 실행을 고려한 결과를 준다

실행 되지 않는 리서치 보고서는 쓰레기다라는 말 앞에서 작아졌던 적이 많다. 물론 지금도 이 말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리서치 코디네이터는 리서치 결과를 통해서 비즈니스 상의 목적 달성을 위해 실행조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실행방향을 제안해 주는 것이 가장 큰 업무의 미션이다. 그런 관점에서 실행방향 설정을 고려한 결과를 리서치 회사가 전달해 준다면 참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아주 구체적인 실행방향은 리서치 회사의 태생적인 한계로 전달해 주기가 어렵다. (물론 업계에 대한 내공이 뛰어난 고수 리서처 분들은 가능하신 분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있고 그 몫은 코디네이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실행안에 대해서 고민하기 위해서는 리서치 결과의 팩트들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지도는 몇 %이고 만족도는 몇 %이고 만족하는 이유는 무엇이고?와 같이 나열하는 것은 그냥 테이블을 보면 된다. 그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장 상황을 앞서 언급한 데이터를 통해 명쾌하게 정의하고 그러한 상황하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각각의 사항에 대해서 소비자들을 고려 할 때 몇 가지의 접근 방향이 있는지? 각각의 접근 방향의 기회와 위협요인은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정리해 주면 그러한 상황을 고려해 실행방향을 정교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데이터를 이렇게 받았으니까 기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여주고, 결론은 요약정리 수준이면 테이블을 재정리하고 자세하게 볼 시간을 많이 줄여줬다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보고서는 크게 다음과 같은 등급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다

D레벨: 테이블을 보기 편하게 문서화 한 보고서

C레벨: 단순한 빈도 분석 이외에 다양한 교차분석, 분석툴 적용으로 새로운 팩트를 담고 있는 보고서

B레벨: 현황(시장)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그에 기반한 인사이트를 담고 있는 보고서

A레벨: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좋은 실행방향까지 제안하는 보고서

평균적으로 C레벨 보고서가 가장 많고 B레벨 보고서가 가끔 나온다. 완벽한 A레벨 보고서는 개인적으로도 계속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좋은 보고서는 리서치 회사의 노력과 코디네이터가 5:5 정도로 책임을 나누고 있다고 본다.

 

Think Messy.
Think Messy. by –nath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쓰다 보니 내용이 무척 길어졌다. 그리고 다 써놓고 보니 개인적으로 반성되는 부분도 많다. 나 또한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많고, 파트너들에게 원하는 것은 많으면서 좋은 협업을 위해 해야 될 노력은 등한시 한 것 같기 때문이다. 혹시 리서치 회사에 계신 분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리서치 코디네이터 몇 번 해본 철 없는 사람의 푸념 정도로 봐주면 감사하겠다. 하지만 경쟁 리서치 회사 대비해서 클라이언트가 어떤 파트너로 자신을 생각하는지? 자신이 항상 함께 일하고 싶은 파트너인지? 고민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써보니 이런 클라이언트는 죽이고 싶다(?)로 누군가 작성해주면 참 재미있고 도움이 될 것 같다.

Posted by honeybad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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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메일로 마케팅리서처가 되고 싶은 학생, 또는 마케팅리서치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의 질문이 많다. 그 질문에 대해서 성의껏 답변을 주고 있고, 가능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마케팅리서처가 되는 것 또는 마케팅리서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녹록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마케팅리서처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할까 한다. 물론 마케팅리서치 회사에서 일한 기간은 2년 정도가 전부이며, 한 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굉장히 편협한 이야기가 될는지도 모르겠다.(물론 사회생활 시작하고 지금까지 연관된 업무를 하고 있지만)

먼저 마케팅리서처가 매력적인 이유는 최일선에서 소비자와 조우한다는 점이다. 그 조우의 과정에서 보석같이 반짝이는 인사이트들을 만나는 경험만큼 희열을 얻는 다른 직업이 있을까?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콜롬버스가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한 기쁨의 1/10 정도는 될 듯 하다^^
또한 프로젝트가 하나 하나씩 끝날 때마다 쑥쑥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수 많은 직업들이 있지만 개인의 성취욕을 이렇게 강하게 느끼게 하고, 단기간내에 내공의 발전을 이루게 하는 직업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능동적이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2년에서 3년차, 대리 정도의 직급이 되면 자신이 프로젝트를 맡아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물론 수동적인 업무들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어떠한 현상을 규명할 것인지?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그 내용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대부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즐겁다.(물론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크지만...)

그리고 전통적인 회사들 대비 분위기가 자유롭다. 불필요한 눈치를 보거나 비생산적인 업무들을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간혹 있기는 하지만) 출,퇴근 시간도 어느 정도 자유롭다(이 부분은 워낙 업무 강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간략한 장점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보도록 하자.

먼저 마케팅리서처는 업무 강도가 무척 높다. 물론 개인별, 회사별로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 일반 회사 대비 업무가 많다. 대략 평일에 칼퇴근은 꿈도 꾸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리고 스케쥴 관리 잘 못하면 주말 출근도 잦다. 개인적으로는 주말에 열심히 쉬고, 충전해야 평일에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꼭 평일에 일을 마무리 하려고 노력했다. 그럴 경우 평일의 경우 10시 정도 퇴근했고, 업무가 많을 경우 새벽 1~2시 정도 퇴근 했던 것 같다.(가장 심하게는 1주일 정도 거의 집에 못들어간 적도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리서치 회사의 수익구조에서 비롯된다. 리서치 회사는 어느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를 얼마만큼 수주하는지에 따라서 매출액이 결정된다. 그런데 국내 리서치 비용 단가 자체가 워낙 낮다.(듣기로는 역사가 훨씬 짧은 중국이 국내 보다 1.5배 높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결국 양적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해야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결국 연구원 별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리서치 비용 단가 자체가 낮은 이유는 리서치 회사들이 단가 경쟁을 경쟁적으로 해오기도 했고, 클라이언트사에서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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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이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빡세게(?) 일하는 것이 미덕아니냐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 빨리 성장한다. 그런데 정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업무가 많아지면 기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즉 리서치 회사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고서를 적당히 깨지지 않을 정도로 써버리게 된다. 그러면서도 연애도 못하고, 자식노릇, 엄마노릇, 아빠노릇도 잘 못한다. 이 상황이 2~3개월이 지속되면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보고서를 쓰는 기계가 된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경험들은 정말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그런 패닉 상태를 넘기면 정말 자신이 한단계 성장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들을 조금 즐기기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어느 정도 조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단기 레이스에서는 적당하지만 인생은 그리고 개인의 커리어는 그 보다 훨씬 긴 장기레이스이기 때문이다. 리서처는 하나의 지식을 레벨업하는 것보다 무한한 상상력이 더 중요하고, 상상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여유는 필수적이다.

또한 리서처는 클라이언트와의 계약 관계상 갑,을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다. 을로서 일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을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비즈니스 관계에서의 갑,을 관계는 이론적으로는 상호평등한 입장이다. 하지만 국내 많은 기업들은 갑,을 관계를 어느 정도의 주종관계로 생각한다. 그로 인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전혀 상식적이지만 않은 빠른 일정을 요구한다던가, 사전에 클라이언트가 잘못 전달한 목적으로 잘못 도출된 결과를 모두 책임지라고 하기도 하며, 심하게는 무적절한 접대도 요구하며 반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합리적으로 일을 진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클라이언트도 존재한다. 그들과의 말이 안되는 상황에서 많은 부분을 참아야 한다는 을의 입장이 분명 쉽지는 않다. 전투적으로 싸워보기도 했고, 순순히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참 비애를 많이 느꼈다. 난 지식을 팔려고 리서처가 되었지 웃음을 팔려고 리서처가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리서처는 어느 순간에는 영업맨이 되어야 한다. 앞의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다. 대부분 리서치 회사는 팀별로 할당된 매출액이 존재한다. 당해 연도에 해당 매출액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 조직의 미션이다. 당연하다. 리서치 회사는 순수연구기관이 아니고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트의 결과가 우수하면 자동적으로 매출액은 확보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즉 실력과 내공이 최우선의 영업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물론 맞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실력은 없지만 탁월한 영업실력(?)으로 많은 높은 매출을 달성하는 팀장이 실력은 뛰어나지만 매출은 다소 부족한 팀장보다 더 인정을 받는 경우를 보며 개인적으로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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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이야기 한 것이 현실적으로 리서치 회사에 근무하면서 느꼈던 힘든 점이었다. 업무 강도가 많은 것은 어느 순간에는 의무처럼 생각했고 성장의 기쁨이 수반되기 때문에 즐거웠다. 하지만 비합리적인 갑을관계와 영업에 대한 압박은 참 적응하기 힘들었다.물론 합리적인 갑을관계를 가져가면서도 실력으로 성공하는 멋진 분들도 많다. 만약 리서치 회사에서 계속 근무를 했다면 그런 분들을 롤모델로 삼아 일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이 점점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기도 하고 전혀 앞에서 이야기한 문제들이 없는 회사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케팅리서처에 뜻을 두고 있는 예비리서처들이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화려함만을 보고 마케팅리서처를 꿈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매력만큼의 험난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리서처가 되어 이런 문제들을 겪지 않는다면 자신을 이끌어주고 있는 사수, 팀장, 회사에 정말 감사하고 그런 문제로 고민했을 시간에 조금 더 멋진 리서처가 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하지만 사전에 이런 문제들에 봉착할 경우를 대비해 적어도 마음가짐과 자신의 정체성은 명확하게 하길 바란다. 그것이 정말 더 큰 리서처가 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준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비리서처 분들의 건승을 기원해보고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며 나 또한 초심으로 돌아가 합리적인 클라이언트, 리서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honeybadger :

모든 마케팅담당자(클라이언트)는 소비자와 시장에 대해 대단한 insight를 발견하고 싶어한다. 즉 마케팅담당자는 마케팅리서치를 통해 그 동안 발견하지 못한 대단한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대단한 insight를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담당자가 전혀 몰랐던 사실이나 시장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올 수 있는 정보를 마케팅리서치를 통해서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시장 내에서 그러한 insight가 없을 수도 있다.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경우 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둘째, insight를 얻기 위한 내,외부 정보가 부족한 경우다. 개인적인 경험상 시장조사결과만으로는 insight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자사의 상황과 거시적인 시장의 상황을 이해할 때 시장조사결과가 올바르게 해석되고 그 결과 훌륭한 insight를 도출할 수 있다. 시장과 소비자는 자사의 마케팅 활동, 시장의 변화에 의해 당연히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케팅리서처는 조사를 의뢰한 마케팅담당자가 고민하고 있는 내부적인 마케팅 이슈들이나 내부 마케팅프로세스, 기타 내부적인 정보에 대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마케팅담당자가 내부의 정보들을 공유하는 것을 꺼리거나, 마케팅리서처가 당연히 알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케팅리서처는 시장전반에 대한 거시적인 지식들이나 경험들은 많지만 해당 기업의 내부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다소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부 정보들이 결합되었을 때 시장조사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는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되고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마케팅담당자는 리서처에게 보다 많은 정보들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반대로 리서처는 더 나은 조사결과를 위해 많은 정보들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마케팅담당자는 권위적인 갑(?)의 위치를, 리서처는 소극적인 을(?)의 위치를 고수하는 경향이 많아 좋은 결과를 얻기가 제한되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많은 마케팅담당자들이 내부적인 정보의 공유 없이 컨설팅 수준의 결과물을 얻기를 기대한다. 엄밀히 말해서 컨설팅과 리서치는 일을 진행하는 형태(용역의 발주, 프로젝트 별 운용)는 비슷하지만 업무의 범위가 크게 다르다. 리서치는 소비자와 시장을 파악한 결과가 주가 되지만 컨설팅은 기업 내외부의 모든 정보를 활용해 결과를 도출한다. 결국 리서치가 컨설팅 수준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내부의 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럼에도 컨설팅고 같은 전방위적으로 전사적인 차원의 전략 도출은 기대하기 힘들긴 하다)

이를 위해 리서처 입장에서는 2차자료(외부정보)와 내부정보(마케팅 담당자가 제공하는 정보), 시장조사를 통해서 얻은 자료(프로젝트의 주요 정보)를 모두 분석에 활용하기 위한 자세가 요구된다.

마케팅리서치는 소비자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단순한 정보 획득을 넘어 실제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insight를 얻는 것은 결국 마케팅담장자와 리서처와의 절묘한 파트너쉽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