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는 리서처가 리서치 회사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이번에는 그렇게 떠난 리서처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대부분 리서치 회사에 있다가 다양한 업종에 있는 회사의 리서치 담당자, 통상적으로는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불리는 직군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물론 전혀 다른 부분으로 가시는 경우도 많지만) 을에서 갑이 되고, 대부분 큰 대기업으로 가시는 경우가 많아서 어떻게 보면 잘 풀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모든 것들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리서치 코디네이터로서의 또 어려움과 고민이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항상 꿈꿔오던 업종으로 오게 되어서 그 자체로 참 기뻤지만 막상 새로운 위치에서 이전에 리서처와는 다른 형태의 미션을 갖게 되니 이 부분도 참 쉽지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재미있게 그리고 나름 설정한 목표를 갖고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을까요? 제 경험과 그리고 같은 입장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1. 요구되는 역량 자체가 다르다.
제가 처음 느꼈던 것은 외부의 리서처와 내부의 리서치 코디네이터가 거의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요구되는 역량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고 점입니다. 리서치 방법론과 같은 전문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업종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며, 리서치의 주제가 내부적으로 어떤 배경과 목적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지? 와 같은 질문이 무척 중요합니다. 또한 결과를 사용하게 되는 사업단위의 상황 파악과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합니다. 물론 외부 리서처도 이런 부분에 대한 중요성은 마찬가지이지만 실제 체감되는 수준은 완전 다릅니다. 아무리 리서치 방법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도 후자로 이야기한 부분이 잘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리서치 코디네이터가 되기 힘들다 봅니다. 그런 면에서 가끔 회사가 속한 업종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없는데 그 회사의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일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전자회사를 다니면서 전자 제품에 별로 관심이 없고, 통신 회사를 다디는데 통신쪽에 별로 쌓인 지식이 없으며, 웹서비스 회사를 다니는데 웹서비스를 평균적인 유저보다도 덜 사용하는 경우들 입니다. 리서치 회사에서는 짧은 기간에 해당 업종에 대해서 스터디하고 진행하면 아마 큰 문제가 없었을테지만 리서치 코디네이터에게는 이런 경우라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큰 탈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고 결과도 도출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습니다. 만약 현재 리서처에서 일반 기업의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이직을 고려하신다면 그 기업의 제품, 서비스에 나는 얼마나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는가?를 한번 꼭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2.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메인이 아니다.
리서치 담당자로 기업에 들어오게 되면 지원 역할이지 메인이 아닙니다. 리서치 회사에서는 리서처가 매출을 일으키는 핵심구성원이지만 일반 기업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원자, 조력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조직내 성장 관점에서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리서치와 연결된 roll의 수장이 성장할 수 있는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실제 사업도 기획도 해본적이 없는 리서처에게 사업을 맡기기에도 너무 많은 리스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조직의 인정, 보상에서도 일정정도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다른 roll로 전환을 하거나, 다시 리서치 회사로 컴백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리서치를 조금 더 확장, 발전시켜서 조직내의 비즈니스 문제 해결, 통찰을 제공하는 guru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역량과 경험도 많아야겠고 또 실질적인 멋진 결과도 내야겠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어떤 지위나 권력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지만 결과에 대한 사업부서의 신뢰, 그를 통한 명예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러한 가치도 충분히 걸어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내에서 메인에 속해서 높게 성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라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많이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리서치 역량을 기본으로 roll을 전환하는 방법을 빨리 찾는 것도 좋다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 유저, 시장에 대한 이해, 데이터 분석력은 어떤 일을 하든 든든한 토대와 강점이 된다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roll을 수행한다고 해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바쁘게 몰아치는 일에 중독되어 있다면 조금은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리서치 회사에 있는 리서처는 너무 바쁩니다. 거의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일에 빠져살죠.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이 어쩌면 그렇게 바쁘게 일하고 빠르게 결과를 보고 성취감을 얻는 행태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일반 기업으로 들어와서 리서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게 되니 이전 대비해서는 확실히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그 여유가 사람을 매우 불안하게 하더군요. 그때 아! 내가 빠른 리서치 프로젝트의 성취감들에 많이 중독되어 있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여유가 어쩌면 조금은 더 창의적인, 이전에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을 고민하기 위한 여유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특정 프로젝트 진행이 아니라 주제에 대해서 따로 공부하는 시간, 리서치 결과와 연결지어 분석해야 할 내부의 수 많은 데이터를 봐야 하는 시간, 프로젝트 주제에 연결된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 통찰들을 듣고 수집해야 하는 시간, 모호한 방향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액션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 부분은 누가 하라고 강요하는 부분도 아니고, 하지 않아도 결과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즉 창의적으로 찾고 고민해서 해야 하는 일들인 것이죠. 저도 100%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고 노력만 하고 있는데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딱 리서치 프로젝트 진행만 하겠다는 마인드가 아닌 이슈가 되고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말처럼 쉬운 것 절대 아니라는 것 저도 잘 알고 있고, 알지만 잘 못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4. 다른 스폐셜리스트와 융화하고 함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처음 제가 리서치코디네이터로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리서치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처음에는 아! 이런 동료들이랑 어떻게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나 싶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보지 못하는 통찰과 아이디어들을 그 동료들이 전달해 주더군요. 비록 조사방법론을 잘 모르고 설문지를 만들거나 FGD 셋업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프로젝트의 주제에 대한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말 좋은 의견과 대안을 그 동료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리서치 코디네이터로서 일하게 되시면 동료들이 모두 리서처 출신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의뢰한 사업부서는 리서치에 대해서 잘 모를 수 밖에 없고요. 그렇지만 그 동료들 사업부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문제해결의 전문가들이며, 리서처 출신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어떻게 융화하는지가 좋은 결과를 내는데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IDEO나 인텔의 민속지학에 기반해서 리서치를 진행하는 팀은 리서치 전문가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 제품 기획자, 마케터, 인문학자, 고고학자 등의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이들로 구성이 되어 리서치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다양한 통찰들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저 또한 매우 공감을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리서치팀은 리서치 전문가로 구성되기 보다는 다양한 다른 토양을 갖고 있는 이들로 구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그래서 더욱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일한지 저도 4년이 되어가네요. 그 동안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일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문제 해결의 전문가가 되지도 못한 것 같고, 여전히 조직내에서 리서치가 좋은 지원도구로 완벽하게 스며들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요즘에는 참으로 힘든 부분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조언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도와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저와 같은 비슷한 고민들을 많은 리서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갖고 계실 것 같고, 리서치 코디네이터의 전환을 생각하시는 리서처 분들은 한번 정도는 깊게 고민해 봐야할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배운 것이 리서치라 너무 리서치를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기에 또 달려봐야겠지요.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