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전지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통째로 변화시킨 혁신가라는 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다. 애플의 혁신과 성공은 스티브 잡스의 개인기에 기반한 것이 크지만 그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을 정도로 애플의 제품군이 소품종이었기 때문이다. , 좁은 전선에서 한명의 사령관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한다. 만약 삼성과 같은 다품종의 회사였다면,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이 수 많은 서비스들을 갖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제품들의 획기적인 정리였던 점도 돌이켜보면 선택과 집중의 아주 좋은 예이자 애플 혁신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서비스나 제품이 아주 많을 때, 동시에 모두 중요하거나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가치를 주는 서비스라서(포털처럼) 선택과 집중도 어려울 때 뛰어난 의사결정권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체적으로 이런 상황일 때 가장 흔하게 보는 경우가 내부 보고 구조를 중앙집권적으로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경우다. 하나 하나 보고 받고 컨펌한다. 전부를 챙길 수 있어서 안정적으로 느껴지지만 만만치 않은 부정적인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 같다.

우선 전체적인 의사결정의 속도가 저하된다. 가장 상위 의사결정권자의 승인 없이 일이 진행이 안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도 중간 의사결정권자, 실무진이 지지 않기 때문에 실무자는 상위 보고까지 몇 번의 보고를 해야 한다. 보고만 하면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차상위 의사결정권자의 취향(?), 코드(?)를 고려해 초기안은 조금 더 안정적인 안으로 무뎌진다. 결국 썩 괜찮은 안이 아닌 안정적인 안이 보고되고 초기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사라지거나 진행이 결정된다고 해도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결정권자라도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 없다. 스마트폰에 혁신적인 통찰을 갖고 있다고 해도 냉장고에도 통하거나 냉장고에 맞는 통찰을 갖고 있을 확률은 떨어진다. 명쾌한 통찰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피드백을 줄 수 없고 이는 야전의 불신을 야기한다. 불신은 의욕을 감퇴시킨다.

아주 뛰어나고 워커홀릭인 의사결정권자일수록 이런 경향(모든 것을 검토하고 리뷰해야 직성이 풀리는 중앙집권적 성향)은 강하다. 그런데 본인은 정말 열정적으로 일하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고갈되어 있고 직원들은 열정적이지 않다.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도 없는 이들이 제일 먼저 잃어가는 것들이 바로 아이디어와 열정이다. 보상이 아니다. 권한이 주어지면 알아서 그 안에서 목표를 세우고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어느 것 하나 없는 상황일때 만큼 무기력한 경우는 없다.

한정된 리소스를 갖고 하는 싸움이라 본격적인 싸움을 하기 전에 분석하고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은 실로 중요하다. 하지만 그 싸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저 멀리 떨어진 사령부가 아니라 바로 앞 참호속에서 바로 목숨이 걸린 야전의 병사들 아닐까?

혁신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자리에 진득하게 오래 앉아있는다고 생겨나는 것도, 이만큼 이루면 돈을 이만큼 더 준다는 보상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권한을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만약 그것이 불안하다면 신뢰관계가 없는 것이며, 사람 잘못 뽑은 것이다.

엄청나게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소소하게 이룬 것들을 복기해보면 모두가 자신의 권한을 갖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능력을 펼치고 각자를 인정하고 신뢰했던 경우였다. 설령 실패했더라도 이 경우 자신이 권한을 갖은 만큼 알아서 책임을 지고자 한다.

아이디어가 빈곤하고 속도가 너무 느리고 이것이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라면 혹시 권한이 독점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