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 광고에서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류(類)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름답고 도회적인 광고 모델과 스타일리시한 감각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화려한 파티나 미시족들의 유쾌한 수다. 마지막에 살짝 흘러나오는 아파트 이름은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어딘가에서 들어봄직한 세련된 작명이다.

30초짜리 트렌드 드라마 한 편을 연상시키는 이런 광고의 초점은 철저히 브랜드에 맞춰져 있다. 겨울에 따듯하고, 교통이 편하며,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다는 따위의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다. “저 사람 자이에 산대”, “누구는 서초동 래미안 샀다더라”는 한마디로 게임은 끝난다. ‘아파트=브랜드’라는 공식이 지금처럼 명확했던 때는 없었다.》

○ 치열해지는 경쟁, 래미안의 질주

아파트 브랜드의 경쟁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삼성물산의 래미안, GS건설의 자이, 대우건설의 푸르지오처럼 이미 잘 알려진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 전쟁 1라운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 여기에 현진(에버빌), 월드건설(메르디앙), 이수건설(브라운스톤), 태영(데시앙), 신도건설(브래뉴) 등 중견업체들이 속속 제2라운드에 뛰어들었다. 건설업계의 맏형 격인 현대건설도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며 최근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새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띄웠다. 이른바 ‘아파트 브랜드 3차대전’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경쟁자들이 꺾어놓겠다고 벼르는 1순위 대상은 래미안. 2000년 아파트의 브랜드화를 일찌감치 선도했던 리딩 브랜드다. 후발 주자를 따돌리기 위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래미안의 브랜드 전략은 연작 드라마 형식의 ‘스토리가 있는 광고’. 래미안은 5월 ‘클라이맥스를 산다’는 시리즈 광고를 시작했다. 모두 4편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일반 광고보다 긴 45초 동안 진행된다.

진짜 드라마처럼 전편의 주요 장면을 살짝 다시 보여주는 ‘시놉시스 광고’가 등장했고 런칭 당시 영화 포스터 같은 ‘광고 포스터’를 내거는 독특한 아이디어도 선보였다.

브랜드 이미지를 뒷받침할 기술 업데이트 계획도 잇따라 발표했다. ‘하우징 컨버전스(Housing Convergence)’ 컨셉트를 통해 발표한 특허 기술들이 포함됐다. 예를 들어 원패스 시스템(one-pass system)은 일단 입구에서 안면 인식으로 출입 인증을 받으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거주하는 층에 자동으로 멈추고 부재 중 도착한 택배의 알림기능이 작동하게 돼 있다.

○ “우리도 둘째라면 서럽다”, 후발주자들의 맹추격

‘특별한 지성(eXtra Intelligent)’을 의미하는 자이는 탤런트 이영애를 꾸준히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금까지 13편의 광고를 내보냈다. 세련된 도시여성의 생활을 가장 돋보이게 브랜드에 각인시킨 사례로 평가된다.

올해는 ‘My special love’ 캠페인으로 문화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전국 122개 자이 입주자 동호회 중 인테리어 동호회인 ‘보니따까사’를 소개해 자이 주민들만의 특별한 기회를 강조했다. 사후관리 서비스를 강화한 것도 특징. 전국에 5개 권역별 고객지원(CS) 사무소를 설치해 입주자들의 불만사항을 처리하고 있다. 하자 발생이 접수된 뒤 직원이 10분 만에 도착하도록 한 ‘10분 출동 서비스’, 주부로 구성된 CS 전문요원의 ‘자이안 매니저’ 모니터링 활동 등도 병행한다.

푸르지오는 6월 국내 시장 및 여론 조사기관인 AC닐슨에서 조사한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우건설 측은 “경쟁업체보다 늦게 뛰어들었는데 브랜드를 선보인 이후 3년 만에 쾌거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도시적인 현대 여성의 이미지를 보유한 탤런트 김남주의 모델 효과도 한몫했다. 아파트에 환경 브랜드의 개념을 도입하고 자연친화적인 색깔을 사용해 소비자 층을 파고든 점, 남다른 투자의 안목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 홍보 메시지 등도 성공적이었다.

‘푸르지오에 가면 물어볼 게 많아집니다’라는 헤드카피는 주부 소비자들의 심리를 다시 한번 파고 들었다. 해외의 최첨단 호텔에 묵을 때 불 켜는 방법, 물 트는 방법이 달라 낯설어하면서도 ‘멋지다’고 감탄했던 기억을 건드린 것. “마음 편히 살기엔 너무 어려운 아파트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상반된 평가도 있기는 하다.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은 브랜드 로고인 오렌지 색깔의 구름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효과를 봤다. 색깔 마케팅에 주력해 입주자 대상의 각종 서비스 이름도 ‘블루’ ‘그린’ 등으로 지었다. 이번에 잡은 컨셉트는 ‘집은 쉼이다’는 것. 여러 차례 소비자 조사를 한 결과 ‘집은 역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화려하기는 하지만 편안한 느낌과는 거리가 있는 톱스타도 광고에서 떨어냈다. 인지도가 낮은 신예 모델이 채시라 대신 나섰다. 아파트 입면 디자인에 대한 미술저작권을 취득한 점도 강조하고 있다. 브랜드와 색깔, 디자인의 결합으로 시도하는 차별화 전략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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