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지고 훈남이 뜬다

인간적인 매력, 훈남은 우리의 자화상
 


‘훈남’을 아시나요?
40대를 넘긴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말일 듯하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요즘 온통 훈남, 훈녀에 대한 얘기들로 북적거린다. 훈남은 ‘훈훈한 남자’를 줄인 신조어다. 인터넷에서 훈남을 검색하면 완소훈남(완전 소중한 훈훈한 남자) 혹은 완소훈녀 등이 즐겨찾기로 나올 정도다. 요즘 꽃미남이 지고 훈남이 뜨고 있다. 꽃미남은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지칭하지만 훈남은 외모에 상관없이 나를 설레게 하는 남성을 가리킨다. 원빈, 장동건 등 조각 같은 얼굴과 몸매가 꽃미남의 전형이었다면 수줍은 미소나 터프한 말투, 세련된 옷맵시 등이 훈남의 조건들이다.


위버 섹슈얼을 넘어 훈남으로

강인한 전통적인 남성상에서 꽃미남(메트로섹슈얼) 시대를 거쳐 이 둘의 장점을 합한 위버섹슈얼(ubersexual)이 한 동안 산업 전반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영화 ‘왕의 남자’의 열풍으로 양성미를 추구하는 스타일을 의미하는 크로스섹슈얼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트렌드의 중심에는 예쁜 남자라는 기본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강인함 속에서 부드러움을 표현한 위버섹슈얼 역시 잘생긴 외모가 기준이 된다. 위버섹슈얼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다니엘헤니, 권상우 등은 얼짱, 몸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훈남은 외모가 기준이 되지 않는다. 잘생기지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무엇인가(something new)가 있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 메트로섹슈얼이나 위버섹슈얼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훈남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주변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이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가졌고 비슷한 일상속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존의 꽃미남들은 영화배우, 가수 등 인기 연예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훈남은 운동선수, 일반인, 혹은 나이 지극한 아저씨도 포함된다. 박지성 선수는 순수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10대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며 최고 훈남으로 꼽히고 있다. 또 영화 ‘한반도’에 출연한 배우 강신일씨 역시 훈남의 대표 스타일로 꼽히고 있다.

최근 10대들이 주로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자신만의 훈남을 소개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프로야구 선수 심수창을 비롯해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판 바스터 감독은 세련된 옷맵시 때문에, 토고 축구대표팀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로는 적당히 마른데다 탄탄한 몸매 때문에 훈남으로 지목됐다. 이처럼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훈남들이 전면에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훈남 열풍이 개성을 중시하는 10대들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개인 홈페이지 등 인터넷 발달로 정확한 자신의 의사와 감성을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화, 광고계를 강타한 훈남들 

요즘 인터넷에는 훈남과 함께 생얼이 화제다. 생얼은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의미한다. 곱게 화장한 얼굴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과장된 표상이었다면 생얼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얼짱 스타들을 흠모하던 10대들이 화장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에 사로잡힌 것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면에서 훈남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광고계에도 이 같은 생얼, 훈남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식초음료 광고의 송혜교가 대표적인 케이스. 광고는 파파라치에게 쫓기던 톱스타 송혜교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던지며 맨 얼굴을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전지현과 성유리, 정려원 등이 출연한 광고도 이와 유사한 컨셉을 선보이고 있다.

생얼과 함께 광고계를 흔들고 있는 훈남은 맥주 광고의 박지성과 감우성, 박해일, 차태현 등이 편안한 이미지로 어필하고 있다. 훈남의 또 다른 표현으로 주몽형 남자가 있다. 이는 MBC 대하사극 주몽역의 송일국과 같은 스타일을 말한다.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망설이는 듯한 말투로 여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면서도 세상에 지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캐릭터다. 귀여움과 터프함이 혼재돼 여성들에게 색다른 매력으로 어필되고 있다.

광고 시장에도 주몽형 남자를 등장하고 있다. 모 휴대폰 광고의 ‘자동차-남자, 힘이 생겼다’편은 주몽형 남자를 잘 표현하고 있다. 황량한 고속도로 갓길에서 고장난 듯 보이는 자동차를 밀고 있는 남자, 운전석에 있는 여자가 장난기 있는 미소를 지으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린 후 남자는 장풍을 쏘듯 장난처럼 손을 움직이자 차가 움직인다는 내용이다.


훈남의 조건은?

최근 TV에 이상한 청년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모 통신사 광고에서 긴 얼굴과 어눌한 말투, 게슴츠레한 눈으로 종이학을 접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VJ 찰스(본명 최재민). 그는 또 다른 광고에서 레슬링하는 두 남자를 야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의 본업은 동대문에서 옷을 파는 일이다. 19살때부터 옷 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일상적인 모습의 그가 잘나가는 방송인으로 변신한 것은 바로 훈남 열풍 때문이다. 찰스는 훈남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훈남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성격좋고 성실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인기를 얻듯이 훈남은 이런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개성있는 자기표현과 남다른 열정, 자신에 대한 사랑 등도 훈남을 표현하는 말이다.

기존의 꽃미남이 외모 중심이었고 위버섹슈얼이 외모를 갖춘 부드러운 남성상이었다면 훈남은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단 한 가지의 장점이라도 제대로 소화한다면 훈남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옷 잘 입는 모습에, 말 잘하고 남을 배려하고 섬세한 그 모든 것이 훈남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훈남이 인터넷을 가깝게 여기는 청소년들이 자기 의사를 거리낌없이 표현하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외모 지상주의를 허물고 전체주의적 사고를 깨뜨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유행처럼 훈남 역시 그런 유행의 한 단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훈남 패션, 스타일리쉬는 기본

리는 흔히 훈남을 ‘못생겨도 성격좋은’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외모와 상관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을 훈남이라고 칭하지만 꼭 못생긴 것이 조건은 아니다. 내면적인 모습을 표현한 위버섹슈얼처럼 훈남 역시 자신만의 개성을 갖춘 매력남을 의미한다. 따라서 훈남의 패션을 어딘가 모자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VJ 찰스는 옷을 잘 입는다. 또 옷 잘입는 네덜란드 감독은 훈남으로 손색이 없다. 요즘 남성복은 네오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절제미를 살린 것이 트렌드라고 한다. 또 위버섹슈얼의 영향으로 남성성과 부드럽고 스타일리쉬한 면모를 표현하고 있다. 훈남 역시 이 같은 트렌드를 고스란히 안고 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리쉬를 표현한 것이 다른 점이다. 자신만의 실루엣과 디자인, 컬러 등을 갖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외모를 중시하는 멋지게 보이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패션에서는 아직까지 훈남을 모델로 한 광고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힙합 브랜드들이 비보이나 그래피티 등을 광고 컨셉으로 표현한 것이 전부인 듯하다. 이들 광고에는 자신의 끼를 표현하는 우리의 주변 사람들이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훈남, 우리의 자화상 

SK커뮤니케이션즈 연구소는 최근 인터넷 트렌드를 조명할 수 있는 IT 신조어를 발표했는데 그중 투글족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투글족은 TWO+글, 즉 두 글자로 의사를 표현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므흣(흐믓하다), 생얼, 훈남 등이 대표적인 투글의 사례. 일부 사람들은 이 같은 경향을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10Q, cb 등의 단어가 쓰이는데 이는 Thank You와 come back의 줄임말. 결국 우리나라만의 문화가 아니라 인류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훈남 역시 이 같은 문화로 이해해야 한다. 외모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모습을 높게 평가하며 의미있고 소중한 것에 접근하려는 노력만큼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결국 훈남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채널 2006년 9월호>

Posted by honeybad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