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좀 도발적인 제목인데요. 개인적인 생각임을 우선 밝혀 둡니다. 유능하지 않아서 리서치 회사에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유능하다고 리서치 회사를 떠나는 것도 아님은 미리 말씀 드립니다.
.:rest in peace by icedsoul photography .:teymur madjderey
자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리서치펌회사가 있는데요. 따져보니 4년이 넘게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네요. 해당 리서치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파트너 들 중 4년전에 대리에서 이제 과장 직급까지 되신 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해당 리서치회사 팀장님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시다가 최근에는 직접 프로젝트를 리딩하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성장을 논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지만 4년이 지나 보니 그분의 역량이나 경험이 참 많이 성장하고 발전하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제 또 좋은 파트너가 생겼구나. 하는 좋은 마음을 갖게 되었죠. 그런데 최근에 해당 리서치회사에 프로젝트를 하는데 이 분이 들어오시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혹시 물어보니 최근에 대기업쪽으로 이직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역시 유능한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들이 생기는구나 생각하면서 좋은 곳으로 가셨다니 축하할 일이구나 했지만 함께 일할 파트너가 한분 없어져서 참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 분에게 왜 이직을 하셨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왜? 유능한 리서처 분들이 리서치 회사를 떠나시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유능하지는 않지만 리서치 회사를 떠나기도 했고요. 리서치 회사는 사람으로 밥을 먹고 사는 회사이니 만큼 유능한 리서처들이 계속 남아있는 것은 특정 회사에서도, 업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유능한 분들이 다른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몇 가지는 이전 글에서도 중간 중간 언급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1) 순수한 리서처로서의 삶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참 모호한 부분인데요. 좋은 리서치 결과 ,통찰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버틸 수가 없는게 현실입니다.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 자기가 얼마 만큼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느냐? 하는 영업의 벽과 조우하게 되죠. 회사의 규모와 상황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으나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리서치회사도 엄연히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데 리서치, 연구만 한다고 돈이 벌리는 것은 당연히 아닐테니까요. 물론 정말 좋은 통찰을 제공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영업의 수단이 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때로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들어줘야 하기도 하고, 웃음을 팔기도 해야 하고, 부탁도 해야 하죠. 이 부분이 천성적으로 맞는 분들은 훨씬 즐겁게 일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겠죠. 이런 상황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업이기 때문에 당연하겠죠. 정작 문제는 리서처에 대한 평가가 그 하나로 획일화 된다는 점에 있죠. 즉, 좋은 결과 통찰을 전달하는 능력도 매출 빵빵하게 가져오는 것 만큼 중요하고 가치있다는 것을 알아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리서치 회사에서도 개인에게만 푸쉬하는 영업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공정한 영업에 대한 지원도 있어야 하고, 적성과 자질에 따라 연구쪽 혹은 영업쪽으로 특화시켜 줄 수도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리서치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는 회사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업에 대한 압박, 을로서의 비애에 민감하신 분들은 리서치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45 Fremont, #4 by Thomas Hawk
2) 규모가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리서치 회사는 매출에 대한 집착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몇 억이나 매출을 했냐?로 순위를 매기고, 조직이나 개인을 평가하죠. 회사니까 당연하겠죠. 그런데 혹시 절대적인 규모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매출의 규모보다 순이익이 얼마냐 되는지가? 다른 업종과는 다르게 리서치 회사에게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에 따라 순이익 규모 자체도 커지게 될 수 있겠죠. 그런데 규모에 대한 집착으로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단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하니까 비용을 낮추다 보니 이익이 마이너스가 나는 프로젝트들이 생깁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다음, 다음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담긴 투자의 개념이죠. 하지만 제 경험상 그렇게 되는 경우 거의 못 봤습니다. 또 규모 일변도로 달리다 보니 일이 넘쳐납니다. 한 연구원이 몇 개씩의 프로젝트를 돌려야 하게 되죠. 이 수준이 어느 정도가 넘어서게 되면 퀄리티 관리가 안됩니다. 그냥 문제가 없는 수준에서 보고서 나가기 바쁘죠. 퀄리티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또 프로젝트 수주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돈은 마이너스고 연구원은 피폐해지죠. 기업 운영상의 전략적인 중요한 무엇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 도통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더군요. 그래서 매출은 탑인데 순이익은 꼴지가 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렇다보니 평가도 좋지 못하죠.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아!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싶어지게 되죠. 바보 같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더디더라도 프라이드를 갖고 받을 만큼 받고 일하고, 그 만큼 확실한 퀄리티를 내는 것이 더 큰 성공의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규모는 큰데 실력은 없어라고 평가받는 회사도 있고 전 그것만큼 창피한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3) 맨땅에 헤딩이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자
간단하게 보면 많은 프로젝트들이 맨땅에 헤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하느냐?에 대한 싸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이 없어서, 여러 상황이 최악이어서, 말도 안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라서 어쩔 수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맨땅의 헤딩을 얼마나 슬기롭게 버티고 대처했느냐에 따라서 성장의 크기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다는 것이죠. 경험이 없다면 회사에서 다른 형태로 그에 대한 백업이 있어야 하고, 여러 상황이 최악이라면 그래도 차선을 강구해주어야 하며, 클라이언트가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다면 때로는 회사 차원에서 풀어줄 필요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매번 그냥 맨땅에 헤딩하라고 합니다. 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개인에게 모든 것을 전가합니다. 1년 2년은 버티지만 그 다음에는 버틸 수가 없죠. 잘못된 것을 잘못 되었다 말하지 못하고,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비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죠. 어느 순간에는 회사가 자신을 도구로 취급한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크게 3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모든 리서치 회사가 이런 것도 아니고 모든 분들이 다 공감하는 내용도 아닐 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무엇보다 이 3가지가 리서치 회사를 떠나게 하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국내 리서치 회사들은 규모가 작고 그래서 장기적이고 큰 그림을 그리기가 어렵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열정적이고 리서치를 사랑하는 분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백발이 성성해서도 자연스럽게 보고서를 쓰고 PT를 하고 리서치 자체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 써놓고 보니 오지랖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리서치 업계가 있지도 않는데) 그냥 리서치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사람의 생각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