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지인 중에 일과 삶에 있어서 닮고 싶은 멋진 분이 있냐고 묻는다면 난 항상 이 분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일에 있어서는 항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행보의 연속이셨고 취미에서 시작한 일들에서는 어느덧 전문가가 되셨고 다시 그것을 비즈니스로 탈바꿈시키셨다. 그분의 능력과 시간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뵐 때면 느껴지던 그 특유의 젠틀함과 여유는 나도 그분의 나이가 되면 그와 같은 향기를 갖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조금 시간이 나시면 한번 뵙고 이제 마흔이 넘은 한참 어린 후배의 고민을 상담드리고도 싶었다. 그런 그분이 갑자기 사고로 소천하셨다. 누구보다 삶과 미래에 가장 가깝고 죽음과는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분이었기에 더 믿기지 않았다.
장례식장 영정 사진의 그 온화하고 자신감 넘치는 환한 웃음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펐고,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던 나는 그때의 나와 비슷한 나이인 그분의 아이들과 홀로 남겨진 나의 어머니와 같은 사모님의 모습에 아렸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딱 30초만 서로 인사할 수 있는 그 시간만이라도 허락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까지도 내가 내내 바랬던 것 처럼...
맞벌이인 우리 부부에게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런 우리 부부와 첫째를 먼저 챙겨주신 분이 형수님이셨다. 물리적인 시간의 제약이 있던 우리에게 살뜰한 챙김을 주시기도 했고 커뮤니티의 중심에서 항상 우리를 먼저 초대해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1학년 때부터의 인연은 소소한 모임과 여행을 통해 일상의 즐거움과 같은 학부모로서의 고민을 나누게 했다. 그런 형수님에게 갑자기 병이 찾아왔다. 2주 전 형수님의 손을 잡고 꼭 다시 일어서시라는 기원을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형님과 아직 어린 세 딸을 남겨두고 그리 쉽게 떠나셨다. 형님의 부탁으로 여행과 모임에서 사진 담당이었던 나는 6년 동안의 기억을 꺼내보며 가장 예쁘게 나온 형수님을 찾았다. 온통 아이들 사진 속에서 몇 장뿐인 형수님 사진을 보면서 나의 게으름과 늘지 않는 실력이 한스러웠다.
그 두 분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인데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하루 차이로 우리를 떠나셨다. 그 이별이 가장 아프지만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빠, 남편이셨고 어린 딸들의 엄마, 든든한 부인이었기에 그 두 분을 떠나보낸 남겨진 가족들이 더 염려되고 마음이 쓰인다.
두 분이 우리 가족에게 주셨던 배려와 애정, 신뢰를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편히 쉬세요.